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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을 더 값지게 하려면 - 남북이 함께 꽃게를 잡는 날을 그리며-


▲2007년 서해5도 주민들의 바람은 "평화롭게 꽃게 잡으면서 중국 어선들이 싹쓸이 조업을 못하도록 만들자"는 것이었다. 11월 24일 아침 연평도 부두, 피난을 떠나는 연평도 주민들. (사진제공 옹진군청)

 지난 11월 23일, 분단체제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인 연평도에 북의 포탄이 떨어졌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이래로 쌍방이 합의한 해상 경계선은 없었으나,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가 '북한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고수한 결과 남북은 항상 불안을 머금고 있었다. 1973년 이래 북한도 나름 해상경계선을 정해놓고 남에서 서해5도로 가려면 북의 허락을 받고 가야한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남북간의 긴장이 충돌로 이어진 것은 1999년 제1차 서해교전과 2002년 제2차 서해교전을 통해서다. 두 차례 교전으로 남북이 번갈아가며 수많은 희생을 치렀다. 그리고 또 다시 2009년 교전에 이어, 2010년 천안함 사고 및 연평도 포격 사태가 발발했다. 급기야 이번엔 민간인이 사망했다. 해병대사령관은 "반드시 백배 천배 보복하겠다"고 했다. 패장으로서 분한 마음만 이해하겠다.
 
이명박 대통령은 11월 29일 대국민담화에서 "협박에 못 이긴 '굴욕적 평화'는 결국 더 큰 화를 불러온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그동안 북한 정권을 옹호해온 사람들도 이제는 북의 진면모를 깨닫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북의 진면모를 온 국민이 함께 깨닫게 된 것을 하나의 성과로 생각하나 보다. 협박에 못 이긴 '굴욕적 평화'는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전 정권을 비난하려는 의도라면 오판이다. 솔직히 실력이 없었다고 인정하는 편이 낫다.
 
"가장 비싼 외교가 가장 싼 전쟁보다 싸다."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이 강연에서 인용한 외교가의 격언이다. 최근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에서 급격히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말이다. 이것은 정부의 '단호한 응징'이라는 모호하고 추상적인 분노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은 정작 북측이 아니라 남측 사회와 우리 국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 정부의 대응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민들은 연평도 포격의 참상과 피란민 대열에서 전쟁이 불러올 참혹함을 알고 있다. 대결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두려운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조치에 앞서 선례를 살펴보아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제2차 서해교전 이후로 서해 접경지역을 어떻게 관리할지를 고민해왔다. 그리고 2005년부터 '서해 연안 해양평화공원 구상'을 국정과제로 채택하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 설치 합의로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한 뒤로 남북은 평화가 아닌 대립을 선택했고, '서해 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합의안은 한 발짝도 진전시키지 못했다. 아니 무고한 희생자만 늘었다. 그동안 발생한 서해 희생자가 도대체 몇 명인가.
 
생뚱맞은 이명박 대통령의 한강하구 나들섬 대선 공약이 기억난다. 고민도 없고 철학이 없으니 애초부터 실현 가능성도 없었다. '비핵개방3000'도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은 이번 담화에서 "이제 북한 스스로 군사적 모험주의와 핵을 포기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고 말했다. 이미 국민 모두가 알고 있었음에도 유일한 방안이었기에 한 걸음씩 그 어려운 평화구축을 위한 길을 걸어왔던 이들은 오늘의 사태에 가슴을 치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두 차례 교전이 있었음에도 2007년에 실시한 서해5도 옹진군 주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서해연안 접경지역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점'을 물은 질문에 '중국어선의 싹쓸이 조업'에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64.8%). 뒤를 이어 '경제적 낙후성과 교통 불편에 따른 지역주민의 삶의 질 저하'(18.5%), 해양환경 오염(14.8%) 순으로 응답하였다. 이 설문에서 '북한과의 무력 충돌 우려'에 대해서는 107명의 응답자 중 단 1명만이 응답하였다(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서해연안 해양평화공원 지정 및 관리방안 연구' 2007).
 
특히 중국어선의 싹쓸이 어업의 영향에 대해 91% 이상이 매우 심각하다, 8%가 다소 심각하다고 응답하고 있어 대부분의 지역주민은 중국어선의 조업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또한 중국어선이 조업활동을 하고 있는 남북간 경계수역에서 어로활동 규제를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절반 이상(52.6%)이 문제되는 해역 전체를 남북이 공동으로 관리하자는 제안에 응답하였고, 관할지역 각자관리(27.4%)와 중국 정부 측의 자체 규제(20.0%)가 뒤를 이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2007년의 조사 결과다.
 
요컨대, 남북이 서해 북방 수역을 평화롭게 관리하면서 중국어선의 싹쓸이 조업에 공동으로 대처하자는 게 2007년의 서해5도 지역 주민의 바람이었다.
 
분단이후 초유의 사태를 맞이한 지금, 이런 지역 주민들의 여론을 담아 대안을 만들어내기란 이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연평도를 군사적 방어 개념에서 공격 개념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한다. 작은 섬에 첨단 무기를 들여놓겠다고 한다. 어리석어도 한참 어리석다. 상대방이 보기에 딱 좋은 타깃이다.
 
백마고지 전투는 한국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격전지 중 하나이자 우리 군사에서 자랑하는 승전으로 꼽힌다. 그러나 아쉽게도 백마고지는 비무장지대 안에 있다. 정확히 말해 유엔군 관할이다. 고지 하나 더 차지하려고 대략 국군만 3000명씩 죽어 갔다. 휴전협상을 시작하고 그렇게 2년 1개월을 끌어 얻은 게 정전협정이다.
 
지난 57년 동안 남북이 정전협정을 서로 수없이 위반해가면서도 분단체제는 그럭저럭 유지되어 왔다. 북쪽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남쪽에선 이명박 정부가 그렇게 자랑하는 G20정상회의도 무사히 치렀다. 그런데 엄연히 정전협정 상으로도 남쪽 영토인 연평도에 포탄을 쏟아 부었다. 우리한테 남은 카드가 무엇인가.
 
전면적인 혹은 국지전적인 분쟁의 결과로 발생 할 수 있는 수십-수백만 명에 대한 희생을 사회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가. 국내외 자본도 역시 그것을 희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민간인에 대한 희생이 발생하지 않는 무력을 동반한 수단은 더 이상 없다. 솔직해지자.
 
더 어렵지만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지난 60년 전쟁과 분단의 역사에서 다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평화롭게 꽃게 잡으면서 중국 어선들이 싹쓸이 조업을 못하도록 만들자"는 이야기는 협박도 아니도 굴욕도 아니다. 이제라도 적극적으로 대화해서 함께 평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용기이다.
 
다시 2007년 10월 4일의 합의로 돌아가야 한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남북이 합의하기까지 어떤 고민과 노력을 기울였는지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게 오늘의 연평도 포격사건의 교훈이다.

글 : 김동언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