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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철새들의 낙원, 한강하구 김포 난개발 현장을 가다

한강하구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이며, 우리나라의 큰 강하구 중 유일하게 하구둑이 설치되지 않아 생물다양성이 풍부하고, 생태적으로 우수한 자연경관이 잘 보전된 지역이다. 김포대교 남단 신곡 수중보에서 강화군 송해면 숭뢰리 사이의 수면부가 포함된 하천제방 및 철책선 안쪽의 60.668㎢가 2006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한강하구 습지보호지역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합류부 주변의 월롱산, 조강과 염하수로가 만나는 지점의 문수산, 김포의 홍도평과 석탄리, 후평리 사이에 위치한 봉성산 등 낮은 산림이 주변지역에 분포한다.
2월 4일 아침 생태지평연구소를 출발해 김포 용화사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8시. 김포 용화사에서 제방도로를 따라 한강하구 습지보호지역을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봤다. 봉성들판과 봉성배수펌프장을 지나니 봉성산(129m) 아래 쉼터를 만날 수 있었다.

쉼터에서 온 길을 돌아보니 봉성배수펌프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는 한강이 유유히 흐르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전류리 포구 방향으로 바라보니 밀물이 들어와 강물을 거슬러 가고 있었다. 전류리 포구에서는 밀물과 강이 흐르는 힘이 같아질 때 물 흐름이 멈추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제방도로로 다시 들어서니 전류리 포구 표지판이 나타났다. 어민들의 조업활동은 전류리포구까지 할 수 있다고 한다. 

한강하구 수계의 식생은 주로 침수식물군락, 갈대군락, 갈대-새섬매자기군락, 교란지 식생인 주개풀군락, 산림식생인 버드나무 군락, 염습지 식물군락, 농경지 매화마름군락지가 있으며, 멸종위기종 1급인 저어새, 흰꼬리수리, 매, 검독수리, 참수리, 노랑부리저어새 등 6종이 서식하고, 멸종위기종 2급인 큰기러기, 튼고리, 개리, 재두루미, 가창오리, 흰이마기러기 등 26종의 보호가치가 높은 야생동식물이 서식한다.

또한 한강하구는 민통선 및 비무장지대에 인접해 있어 임진각, 오두산통일전망대, 애기봉 전망대, 강화평화전망대 등 통일 안보 문화 자원이 풍부하며, 행주산성, 전등사, 마니산 첨성단, 서오릉, 고인돌, 각종돈대, 나루터, 포구 등 다양한 문화재가 있다.

전류리 포구를 지나니 더 이상 제방도로를 따라서 이동할 수 없었고, 내륙도로를 따라 애기봉 전망대를 향했다. 

북녘이 한눈에, 애기봉 전망대에 오르다


애기봉전망대 출입신고소에서 간단한 신분 확인 후 통과하면 애기봉에 오를 수 있다. 주차장에서 차를 주차하고 250미터 정도 걸으면 애기봉임을 알리는 비석이 눈에 들어온다.


보신암 북서쪽에 있는 애기봉은 일명 쑥갓머리산으로 높이 143미터이다. 이 산에는 평안감사와 사랑을 나누었던 애기(愛妓)의 슬픈 사연이 서려있다. 의좋게 살고 있던 두 사람이 병자호란을 당하여 할 수 없이 피난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종로에서 평안감사는 청나라 군사에게 잡혀가고, 애기 홀로 조강리에 나와 날마다 쑥갓머리산에 올라가 북쪽을 바라보며 애타게 평안감사를 기다렸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평안 감사는 오지 않고 애기는 병이 들어 죽게되었다.

"내가 죽거든 저 봉우리에 묻어주시오"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 유언에 따라 이 산 꼭대기에 묻었다고 한다. 그런데 1953년 휴전협정에 따라 휴전선 남쪽 끝이 되므로 1970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애기봉에 비를 세우고 노산 이은상이 시를 지어 기리었으며,  그옆에 30미터나 되는 철탑을 세워서 태극기를 달고, 해마다 부처님 오신 날과 성탄절에 오색 전구를 밝히고 있다고 한다.


애기봉 아래로는 '조강'이 흐른다. 임진강과 만나 서해바다로 나가는 한강하구를 한국전쟁 전까지 조강이라 불렀다. 조강은 강화 외포리에서 조기와 소금을 실은 시선배가 마포까지 내집 드나들 듯 오가던 뱃길이다. 지금도 김포에 조강리가 있다. 그러나 조강리는 남북으로 갈라져 상조강리와 하조강리로 분리되었다.

애기봉에서 조강 건너 정면으로 보이는 북측 선전촌에 사람도 눈에 띄고, 차들도 눈에 띈다. 아쉽게도 이날 새들은 보이지 않았다. 애기봉 아래에는 조강나루가 있었다고 한다. 조강나루는 통진에서 개성으로 건너던 큰 나루였다. 조강나루에는 한강을 건너기 위해 나룻배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개성이나 한양으로 세미를 싣고 가기 위해 만조시간을 기다리는 조선의 사공들이 모이는 큰 포구였다. 그러나 1953년 휴전협정에 의해 조강나루는 그때부터 잠정 폐지 되었고, 그처럼 번성했던 조강포는 현재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기름진 들판이 되고 말았다.

유도는 주막이 있어서 사공들이 쉬어가던 섬이다. 지금은 중립지대로 사람이 들어갈 수 없고, 저어새, 가마우지 등의 번식지가 되었다. 


유도 맞은편 북측 땅. 지명은 쌍마라고 한다.


보구곶리의 논이다. 유도에서 가장 가까운 육지 끝 마을이다. 강 쪽으로 가려했으나 군인들이 검문중이라 돌아나왔다. 이곳에서 쇠기러기떼가 먹이를 먹고 있었다. 


동막마을(성동리) 안내판.


강화를 지켜온 문수산성


문수산성(북문)에서 염하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로 강화도가 보인다. 염하강은 조강을 따라 흘러온 한강물과 김포의 서남쪽 앞에 펼쳐진 경기만의 바닷물과 통로가 된다. 서해가 만조 때면 염하를 통해 조강으로 바닷물이 들고, 만조가 심할 때에는 그 바닷물이 경기만을 거슬러 김포와 서울의 경계부근인 행주대교까지 밀고 들어온다.


문수산성에서 북쪽을 향해 바라본 모습 염하강 건너 왼쪽 가까운 곳은 강화도, 조강 건나 먼 곳은 북측이다.


문수산성 성곽을 따라 올라서 내려다 본 모습. 문수산은 높이가 376미터로 일명 비아산으로 불린다.  

문수산성은 둘레가 약 2400미터로 사적 제139호로 지정되어 있다. 강화의 갑곶진을 마주보고 있는 문수산의 험준한 줄기에서 해안지대를 연결한 성으로 해안 쪽의 성벽과 문루가 없어졌는데 새로 보수했다.

문수산성은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를 지키는 성으로 1694년(숙종20년)에 축조되었고 1812년(순조12년)에 대대적으로 중수되었다. 당시의 성문은 취여루 공해루 등 세개의 문루와 세개의 암문이 있었다. 가운데 취여루는 갑곶진과 마주보는 해안에 있었으며 강화에서 육지로 나오는 관문 역할을 하였다. 특히 이 성은 1866년(고종2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한 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그 전투 당시 해안 쪽의 성곽과 문루가 모두 파괴되었고, 지금은 마을이 들어서 있다.  

산성마을 안내판.

난개발로 사라져가는 철새들의 낙

48번 도로를 따라 김포를 향해 가는 길 흥신리 양촌평야. 쇠기러기 떼가 앉아서 쉬고 있다.
한강하구는 겨울철새가 월동하는 장소이자 봄, 가을에 이동할 때 거쳐가는 정거장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지역별로 보면 한강지역이 가장 많은 수가 도래하며, 오두산, 임진강 지역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주변에 펼쳐진 농경지의 절대 면적 비율과 일치하고 있다. 
한강하구를 이용하는 철새 중에서 가장 많은 큰기러기, 쇠기러기,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등 4종은 논에 떨어진 낙곡에 크게 의존하는 종들로, 한강하구에 도래하는 새들의 60~70%가 인근 논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8번 도로.

1994년 자유로를 개통한 이래 일산 신도시의 개발을 시작으로 파주 출판단지, 통일동산, 파주신도시, LCD 공장 등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다면, 한강 남쪽에선 1997년 김포대교가 준공된 후, 강변도로, 김포우회도로, 김포신도시, 일산대교 등 많은 도로와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 그로 인해 한강하구 인근의 농경지들이 크게 감소하거나 도로에 의해 조각화되어 철새 서식지로서의 기능이 크게 위축되었다.

더불어 10년 이상 계속된 골재채취는 한강하구 저서생물 및 습지 생태계의 교란, 버드나무로의 건성 천이, 철새의 먹이와 잠자리 교란 등 많은 변화를 주었다.

걸포 주유소 앞 김포시 홍보간판.
 

걸포 주유소에서 바라본 제방도로 확장 공사 현장

홍도평야에서 계양천을 따라 가는 길에서 만난 황오리 떼. 

한강하구 주변의 농경지 축소는 재두루미의 도래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89년부터 진행된 일산 신도시의 개발은 주엽벌에 더 이상 재두루미가 도래하지 못하게 하였고, 김포 홍도평 등의 논이 현재 월동하는 재두루미의 먹이터이나 김포 우회도로의 착공으로 인해 100여 마리에 이르던 재두루미 수가 2010년에는 20여 마리로 줄었다.


홍도평 계양천에 논병아리 등이 살고 있다.


홍도평을 지나, 김포지역을 빠져나와 서울로 향하던 길에 들른 경인운하 (제5공구) 공사 현장. 경인운하 공사도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경인운하 공사 현장 위로 김포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다. 그러나 불과 몇해 전까지 철새들의 천국이었던 한강하구 김포 지역은 난개발로 인해 철새들이 더 이상 자유로이 날아다닐 수 없는 땅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작성 : 김동언 (생태지평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