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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겨울철새, DMZ 일원으로 이동을 시작하다!

▲ 추수가 시작된 철원평야 / ⓒ생태지평

쇠기러기 첫 무리가 겨울을 나기위해 철원평야와 한강하구를 찾아들던 지난 9월 26일 경기민족미술가협회 소속회원들과 철원평야를 방문했다. 철원평야 중앙에 위치한 아이스크림고지(삽슬봉)에서 바라본 드넓은 철원평야의 황금벌판은 가을걷이가 시작되어 듬성듬성 머리가 빠진 것처럼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 한강하구 농경지에서 쉬는 쇠기러기들 / ⓒ생태지평

철원평야의 상징인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아직 찾아올 때가 아니라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넓은 황금벌판을 보며 흰 눈밭에 노니는 두루미와 재두루미를 상상해보자며 찾은 철원평야여서 그런지, 예상치 못한 쇠기러기와의 만남은 사람들에게 경탄과 즐거움을 주었다. 누구는 쇠기러기 선발대라고 하고 누구는 성질 급한 놈들이 먼저 내려왔다고도 하지만, 쇠기러기들은 언제나 이맘때면 찾아와 한반도에서 한 겨울을 나고 늦은 5월까지 보내다 간다.

사실 철원평야의 첫 겨울철새 방문자인 쇠기러기들은 철원 농민들과 불편한 관계에 있다. 추수가 끝난 겨울철엔 별 문제가 없지만, 봄철에는 남쪽에서 늦게 번식지로 떠나는 쇠기러기가 모내기를 끝낸 논을 망치기도 한다. 이에 화가 난 농민이 논에 농약을 뿌려 몇 백 마리의 쇠기러기가 한순간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환경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새들이 죽는 것이 무엇보다 안타깝다. 그러나 농민은 경제적인 피해를 입고, 쇠기러기는 자신의 본능에 따라 이동하는 것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어째든 이 문제는 본능을 따르는 쇠기러기보다는 모내기를 늦게 한다거나 하는 농민의 양보와 타협이 필요한 문제다. 철원군에서는 겨울철만이 아니라 봄철에도 생물종다양성 관리계약제도와 같은 제도를 도입하여 농민의 피해를 보상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 장항습지 버드나무군락지. 서해안 밀물과 썰물의 영향을 받는다. / ⓒ생태지평

▲ 물이 빠져 바닥이 들어난 버드나무군락지에서 말똥게가 먹이활동을 한다. / ⓒ생태지평

다음날 한강하구습지보호지역 중 한 곳인 고양 장항습지를 찾았다. 물억새가 활짝 피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도 어제 쇠기러기와 큰기러기가 첫 방문을 했다고 한다. 한강하구는 쇠기러기보다 큰기러기가 더 많이 찾는 곳이다. 장항습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버드나무 군락이 있는 곳 중 하나인데, 왕버들, 수양버들, 관버들 등 다양한 종이 서식환경에 맞춰 자라고 있다. 이 버드나무 군락지 아래에는 말똥게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버드나무는 말똥게에게 먹이(잎)와 숨을 공간 및 햇빛 차단을 해 주고, 반대로 말똥게는 버드나무에게 똥을 통한 양분 공급, 흙 구멍을 통한 토양 공기 공급으로 공생한다. 날씨가 쌀쌀해져서 그런지 말똥게의 움직임이 여름보다 굼떠 보였다.

▲ 썰물의 영향으로 넓은 강변 모래사장이 들어난 장항습지. 멀리 2006년 개통한 일산대교가 보인다. / ⓒ생태지평

햇살에 은빛으로 빛나는 물억새 길을 따라 선착장에 도착했다. 서해안 썰물의 영향을 받아 강변 모래밭이 넓게 드러나 있다. 일견 아무 생명체도 없어 보이는 모래밭이지만, 이 모래밭에도 수많은 갯지렁이와 펄콩게가 한강의 영양분을 섭취하며 생명을 이어가고, 한강물을 깨끗하게 하고 있다. 탁 트인 강의 경치를 가로막은 일산대교와 김포 신도시에서 짐작하듯이, 넓은 강변 모래밭은 이제 한강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경관이다.

▲ 쇠기러기. 추수가 시작되는 9월말부터 우리나라를 찾아와 겨울을 난다. 겨울을 안전하게 나기위한 전략으로 큰 무리를 지어 다닌다. / ⓒ박형욱

▲ 전세계 약 2,800여마리 남은 멸종위기조류 두루미. DMZ 일원인 철원평야는 이들에게 중요한 월동지다. / ⓒ박형욱

어제 파주 환경단체에서 활동하는 분이 두루미 탐조를 위해 철원평야 답사를 다녀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이미 철원평야에 와 겨울나기에 돌입한 두루미들이 있다고 한다. 또 얼마 전 뉴스를 통해 쇠기러기 떼가 철원평야의 하늘과 추수가 끝난 농경지를 뒤덮는 장관도 보았다. 한 동안 새들의 날개짓이 다소 뜸했던 DMZ 일원... 이제 DMZ 일원엔 겨울철새의 시절이 돌아오고 있다!

▲ 철원평야의 두루미와 기러기떼 / ⓒ생태지평


                                                                                                           글. 손성희 연구원 / 생태지평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