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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시선 칼럼

영주댐, 그리고 생사의 기로에 선 모래강 내성천

왕버드나무가 연록의 기운을 뿜어내고 산벚꽃이 화답할 시기에 나는 금강마을 위 비단여울이라 불리는 큰 골짜기를 다시 찾았다. 계곡 불로산의 나무들은 일정 높이 밑으로 모두 베어진 채 가파른 경사면에 널브러져 누워있다. 계곡 깊은 곳, 흐르는 강물에 엎드린 채 새 잎을 피워 낸, 한 때 가장 풍채가 좋았던 왕버들의 잘린 밑둥에서 돋아난 작은 풀이 새하얀 꽃을 피우며 계곡의 슬픔을 전했다. 강을 가로질러 나와 백사장에서 절을 하였다. 나무에 큰 절을 해보기는 처음이지만 한 때 드러난 채 뒤엉킨 뿌리만으로도 어른 한 길은 되었던, 그래서 그 나무가 만들어 준 초록의 그늘 아래서 걸음을 옮기지 못하며 즐거워했던 사람들을 함께 기억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달리 없었다. 남아있는 몇 그루의 큰 나무에 다가서서 하나씩 사진을 찍었다. 한창이어야 할 알록달록한 봄의 향연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맑은 새소리가 계곡의 고요를 더욱 깊게 하던 풍경도 슬픈 강물 따라 어디론가 흘러가고 없었다.


▲ 영주시 평은면(영주댐 수몰예정지) 2012년 6월  박용훈


이산서원에서 괴헌고택 쪽을 향해 걷다보면 맞은편 왕버드나무 군락이 점점 멀어지던 자리, 강 저편 언덕 큰 나무들 아래에서 무리지어 쉬던 원앙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연록이 비치던 물 위를 걷고 뛰고 춤추며 한끼 식사를 해결하던 백로도 떠나고, 한 여름 해를 가려주었던 큰 나무들이 밑둥만 남아있는 주위로 풀들이 올라오면서 서서 히 기억을 덮는다. 저녁이면 꼬리를 물고 이 가지 저 가지로 날아들던 그 많은 멧비둘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두월교 아래 은빛 물결로 흐르던 수십리 강길, 계절을 몇 번 바꾸면서 끝도 없이 강의 속살을 퍼가는 굴삭기와 덤프트럭의 긴 행렬 속에 내성천은 깊고 검푸른 강으로 변해버렸다. 한반도 모래강의 긴 세월과 함께 이곳에서살아온 흰수마자는 무사할까? 4대강사업 이후 낙동강에서는 자취를 감추었다는데..


▲ 영주시 이산면(영주댐 수몰예정지) 2012년 5월  박용훈


흐르는 모래를 막는 유사조절지 공사가 시작되기 전 토일천과 만나는 강가를 그들의 흔적으로 채웠던 삵과 수달은 어디로 갔을까? 몹시도 추웠던 어느 해 겨울, 몸을 조금 물에 잠근 채 꼼짝 않던 동호 강변 굼뜬 자라는 몸을 잘 보전하였을까? 강에 강물만 보이고 산의 나무들이 모두 베어진 어느 자리, 백로 한 마리가 제방에서 꼼짝 않고 자리를 뜨지 않는다. 두어 봉우리만 넘으면 강가 모래톱에서 쉴 수 있으련만 시위라도 하는 것일까? 해마다 가을이 깊어질 무렵 이곳을 찾던 한 마리 먹황새는 다가올 겨울을 어디에서 보내야하나? 모래강과 산을 오가던 크고 작은 동물들은 다 어디로

가야하나?


▲ 영주시 이산면(영주댐 수몰예정지) 2012년 4월  박용훈


한 때 성씨촌을 소개하는 책의 앞부분을 장식했다는 400년 금강마을이 참 쓸쓸하다. 고추모를 심느라 바쁜 손길 멈추고 음료수며 참외를 건네주던 마을 중턱의 한 농부, 마지막으로 수확한 벼를 집안으로 들이다 말고 프린트된 종이 몇 장을 들고 나와 운포구곡을 상세히 설명해주마 하던 기골이 장대한 노인, 어느 해 어버이날 누군가 찾아온 후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환한 얼굴로 평소보다 일찍 마을회관에 출근했던 김할머니는 어디로 가셨을까? 할머니 떠나 텅 빈 작은 마당에 누군가 대놓은 경운기 옆으로 잡풀이 무성하다.


찾아온 대학생들이랑 시원하게 웃으시던 고택 할머니는 문을 안팎으로 걸어 잠그고 담 너머로도 모습을 보여주시지 않는다. 할머니의 소중한 물건들이 자꾸 사라진 후의 일이다. 이미 이곳을 떠난 몇 분의 할머니는 새로운 적응이 아직 낯선지 가끔 마을로 놀러와 회관에서 주무시고, 남의 텃밭에서 같이 풀을 뽑고, 그럭저럭 같이 시간을 보내시는가 보다. 금강마을에 남아있는 가구 중 열일곱 가구는 동네보다 먼저 해가 뜨는 앞산 꼭대기 선산 땅으로 이주할 계획인데, 수자원공사에서 그에 앞서 영주시내에 세를 얻게 해서라도 남아있는 동네 분들을 떠나게 하고 마을을 정리하려 하는 모양이다. “떠나는 것도 서러운데 어찌 두 번 이사 하라는가?” 하고 마을 앞을 흐르는 강을 내려다보는 한 할머니의 얼굴에 수심과 원망이 가득하다. 사진 한 장 보내드렸을 뿐인데 송이 철에 꼭 들르라던 강동 할머니는 어디로 가셨을까? 새 도청 들어서는 까닭에 살던 고향을 떠났다며 예천 터미널 앞 정류장에서 우두커니 앉아계시던 한 할머니가 생각난다. 덤프트럭 먼지 날리며 달리는 길을 걷다가 변해버린 산과 강을 바라보는데 강가 골재 반출 관리용 콘테이너 문이 열리더니 커피 한잔 하고 가라며 누군가 외친다.


▲ 영주시 평은면 금강마을(영주댐 수몰예정지) 2011년 5월  박용훈


내성천, 낙동강의 한 지천이라고 그저 쉽게 말할 수 없는 강, 4대강사업의 부조리를 온 몸으로 견뎌내고 있는 강, 아직 강물과 함께 모래가 흐르는 강이고, 그래서 댐 공사가 시작되고 세 번의 봄을 보냈지만 모래강을 지키코자 하는 희망을 거두지 못하는 사람들이 각처에서 찾아오는 강이다. 사람들은 상주 경천대를 낙동강 제일절경이라고 말하고 구미 해평습지를 철새의 천국이라고 불렀다. 모래가 그 풍경의 중심이고, 끝없이 펼쳐진 모래의 바다가 있어서 태평양을 건너온 새들이 그곳을 찾았다. 이런 낙동강의 장관은 안동댐으로 그 맥이 끊긴지 오래된 낙동강 상류가 만들어 준 풍경이 아니다. 더욱이 상류는 순 모래강도 아니다. 옛 사람들은 문경 영순면에서 안동천과 내성천이 만난 후 상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칠백리 낙동강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강이 휘도는 곳곳에 아름다운 백사장이 펼쳐졌던 낙동강을 있게 한 가장 큰 공덕은 마을 도랑조차 온통 모래뿐인 내성천에게 있다. 그러니 모천인 내성천을 낙동강의 한 지천 정도로만 보는 것은 온당한 대접이 아니다. 한반도 모래강의 전형으로 평가받으면서 개발에서 여러 걸음 떨어진 덕에 야생동물에 좋은 환경이고, 하류에 국가명승지 2곳을 지닐 만큼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내성천이 지금 영주댐 공사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 예천군 개포면 2011년 12월  박용훈


모래가 흐르는 강. 사람들은 내성천을 그렇게 부른다. 하늘이 이 땅에 준 선물, 지구별에서 참 은은하고 아름다운 강, 어떤 인연으로 이 강에 들어 하루 한 때라도 걸어본 사람들은 행복하다. 흐르는 강물 따라 한발 한발 모래를 밟고, 다리를 스치는 맑은 강물을 온 몸으로 느끼고, 그러다 강을 한번 건너고, 모래밭에 누워 쉬고, 다시 강을 건너고... 어느 이국에서의 체험이 아니다. 김밥 싸서 하루 가볍게 떠난 자리에서 얻는 소박한 행복이다. 아이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얕은 강물에 누워서 흰 구름을 바라본 채 강물 따라 함께 흐르는 것을 즐거워하고, 어른들은 편안한 휴식과 어떤

평화를 느낀다.


강 따라 걷다보면 강을 몸으로 알고, 강물 따라 흐르거나 거스르는 물고기 떼를 보면 강은 흐르는 것이라는 것도 당연히 안다. 백사장에 새겨진 고라니, 너구리, 멧돼지, 삵, 수달 등 여러 동물들의 다녀간 흔적을 보면 왜 강과 육지를 연결하는 강 습지 따라서 고속도로 같은 자전거도로를 놓으면 안 되는지 알며, 모래밭 나무 그늘에서 달콤한 휴식을 맛보거나, 나무그늘 드리운 강안으로 제법 큰 물고기들이 어른거리고, 원앙이며 멧비둘기, 백로 따위가 나무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둥지를 트는 것을 보면, 조상들이 강이 휘도는 곳에 왕버들을 심은 깊은 뜻을 알면 왜 강변의 나무들을 그렇게 베면 안 되는지 안다. 다슬기며 조개들이 물 먹은 모래밭에 만들어놓은 자연의 그림들을 보다 보면 왜 강의 모래를 그렇게 퍼내면 안 되는지 안다. 내성천에 가면 강이 무엇인지, 생명의 강 운운하며 깊이 파헤치고 여러 개의 호수로 만들어버린 4대강을 왜 다시 돌려놓아야 하는지 안다.


▲ 영주시 문수면 2013년 5월  박용훈


내성천 심장부를 파괴하는 영주댐사업은 4대강사업의 하나로 1조원을 넘는 사업이면서 그 목적이 불분명한 사업이지만 핵심 본류사업이 아닌 탓인지 공사개시 3년이 지났어도 이슈화되지 못한다. 다목적댐으로서 홍수조절 편익은 0.2%인 반면 준설과 보건설로 맑은 물을 확보한다는 낙동강에 하천유지용수, 즉 희석수를 공급하는 편익이 86.2%인 전대미문의 희한한 공사다. 오죽하면 영주댐을 왜 짓느냐는 한 지상파 방송의 질문에 대해 수공 직원이 “공익사업이라는 것이 수용되는 것은 그 사업으로 인한 편익이 일반적으로 희생되는 가치보다 큰 경우에 진행된다고 보시면 된다”는 답변을 하였을까?, 영주댐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댐 때문에 철로를 이설하는, 그것도 웬만한 댐 하나 건설비용인 2,500억원을 들이는 댐이고, 댐 안쪽에 모래가 쌓이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상류 10여 km 지점에 흐르는 모래를 차단하는 유사조절지라는 대형구조물을 지으면서도, 댐 하류 유사량 감소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댐에 배사문을 설치한다고 말하는 뻔뻔한 댐이다. 이런 구조에서 모래강 내성천은 고사를 피할 수 없다.


▲ 영주시 평은면(영주댐 공사현장) 2011년 5월  박용훈


이미 영주댐 아래 미림 강변은 아름답던 모래가 사라지고 거친 돌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였고, 모래유실로 수위가 낮아지면서 식수에 문제가 생겨서 주민들은 수자원공사가 배급하는 물을 마신다. 영주가 내세우는 무섬마을도, 예천이 자랑하는 회룡포도 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처음 공사가 시작될 때만 해도 대수로워 하지 않던 중류와 하류의 주민들은 댐이 채 완공되기도 전에 마을의 자랑이자 새로운 소득을 낳아주는 모래의 유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곱던 회룡포 백사장은 벌써 여기저기 거친 모습을 보여준다. 무섬은 수공에 큰 보를 만들어달라고 하였는데, 그런다고 강물과 모래가 함께 떠내려가는 중력의 법칙을 벗어날 수는 없어 보인다.


더욱이 백사장과 강변 초목의 균형을 잡아주던 홍수기 강 복원 기능이 댐 등에 의해 상실되면 풀들이 백사장을 점령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댐에 더해 보를 만들면 생각지 못한 부작용들이 생길 수 있는데, 내 마을만이라도 모래유실을 막아보려는 땜질처방이 여러 곳에서 일어나면 우리가 아는 내성천은 삽시간에 사라질 것이다. 수몰예정지 상류도 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댐 만수위 위치인 이산 석포교의 주변 농민들은 만수위가 되면 제방을 높여도 제방 밑으로 스며들어온 강물에 논이 잠길 것을 걱정한다. 수공이 보상해주어야 할 땅을 보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댐은 이렇게 저렇게 지역공동체를 해체하거나 위협하고, 아름다운 강과 그 생태계를 파괴한다. 그렇게 소위 ‘새로운 명품 관광댐’이 계속 올라가고 있다. 2002년 국제댐위원회에 등록한 대형댐만 1,214개인 나라, 물을 가두는 댐이 18,000개인 나라, 국토면적당 댐밀도가 세계 1위인, 댐 천지인 나라에서 명품 댐 운운하면서...


▲ 예천군 용궁면 회룡포 2011년 9월  박용훈


물부족과 홍수피해를 근본적으로 해결한다고 장담했던 4대강사업이 끝나자마자 다시 14개의 댐을 추진하겠다고 하는 지금, 슬프게도 댐이 무엇인지 알려거든 내성천에 와 보시라고 말해야 한다. 종일을 걸어도 베어진 산이고, 뒤집힌 강이다. 헐린 집터, 가재도구가 어지럽게 흩어진 텅 빈집, 의욕을 잃은 채 아직 남아있는 주민들, 댐이란 그런 것들의 다른 이름이다. 동시에 내성천은 다른 모습도 보여준다. 이제 내성천을 찾는 사람들은 논이라는 이름을 잃자마자 습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땅에 주목한다. 원래 강 습지였다가 논이 된 자리, 그 자리가 댐을 짓는 가운데 습지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한편 마음 아프지만, 강이 상처받는 가운데 복원의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영주시 평은면(습지화하는 수몰예정지 논둑을 걷는 내성천습지와새들의친구) 2013년 5월  박용훈


공사를 멈추고 이 강이 스스로 치유하기를 기다린다면, 그리고 그 과정을 우리가 조금만 세심하게 배려한다면, 내성천은 아름다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것이다. 그러려면 많은 사람들이 함께 꿈꿔야 한다. 내 아이와 손잡고 같이 걸었고, 또 걸어야 할 이 아름다운 강에 댐 짓는 일을 중단하라고 함께 외쳐야 한다. 영주댐에 들어간 돈이 아무리 많아보여도, 아이의 아이들이 이 강을 찾아 즐거워하고,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자랄 그 많은 시간들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모래가 흘러야 할 낙동강 복원까지 생각한다면 그 돈은 모두의 미래를 위해 감수해야 할 수업료가 아닐까? 이 강에 가득한

생명의 기운을 우리가 지켜낼 수 있다면 한 때 봉화, 풍기, 영주, 예천 등을 따라 유교문화의 큰 꽃을 피우며 흐르던 옛 강 내성천이 토건사회 극복이라는 문명전환의 새 물길을 열어 주지는 않을까?



글/사진 박용훈 회원(초록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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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생태지평 박용훈 회원의 글입니다.

전태일재단 '전태일통신' 7~8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박용훈 회원은 4대강 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촬영하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보내주시는 글과 사진들을 생태지평 모든 회원들과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