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댐.. 기차가 먼저 떠나고..
햇볕 나른한 봄 날, 마을에서 내려다보이는 강가 철길 따라 안동역을 떠나 옹천역을 들른 후 송리원 철교를 지나서 평은역을 향하는 기차행렬이 눈에 들어옵니다. 댐이 완공되기 전 떠나야 하는 자리, 기차가 먼저 떠나는 것을 지켜보는 금강마을 어른의 마음이 그저 그럴 것 같지는 않겠습니다만, 기차가 지나는 길 좇아 잠시 눈길을 주시곤 농협에 다녀올 일이 있다며 덤덤한 표정으로 마을을 내려갑니다. 72년 긴 세월, 내성천을 바로 바라보는 긴 굽이, 운포구곡 구만이라는 목 좋은 언덕을 지켜온 평은역은 이 날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110여년 철도 역사상 댐 공사때문에 처음으로 철로를 이설하는 일이 생겼고, 이에 2,576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이 날짜 영주신문은 쓰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최초의 기록들을 세우며, 환경과 문화와 역사와 그리고 후대의 땅을 서서히 잠그며, 4대강사업의 하나인 영주댐 공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모래가 흐르는 강" 내성천 생명의 서사시
지율스님의 “모래가 흐르는 강”이 개봉 첫날 부산의 한 상영관에서 매진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모래강 내성천의 생명을 기록한 서사시입니다만, 영화를 보는 동안 지난 몇 년 간의 낙동강과 남한강이 지나가고 지나갔습니다.
지난 수년간 강의 생명들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각 방면에서 노고를 아끼지 않고 싸우고 강을 지켜왔습니다. 지금 4대강에는 16개의 대형 보가 들어섰고, 다시 14개의 댐 추진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댐 백지화 또는 탈 댐을 위한 운동이 전개될 것입니다만 “모래가 흐르는 강”은 4억5천만m³의 모래를 파낸 4대강사업을 둘러싼 가장 큰 싸움의 공간은 바로 한반도 모래강의 원형을 지녔으나 영주댐으로 파괴되는 내성천임을 예고하는 듯 저에게는 보입니다. 동시에 그 싸움은 이제까지의 싸움과는 다른 시공간에서의 싸움임을, 다른 대상과 다른 언어의 싸움임을, 그래서 다른 무기가 필요하다고말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생명을 귀히 여기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만든 갑옷을 전쟁터에 나서는 그 누군가에게 내어놓듯, 길고 긴 시간 풍찬노숙하며 내성천 구석구석 깃든 생명의 기운들을 꿰어 우리 앞에 내어놓은, 스님의 자비와 생명의 언어가, 강과 강에 깃들어 사는 생명들의 파괴를 목도하고 함께 슬퍼하며 함께 싸웠던 우리 모두에게 공유되기를, 우리가 그 긴 시간 싸워왔음에도 무언가 부족했던 그 하나를 채워 함께 생명의 강을 되찾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강을 과거의 시간 속에서 회상하지 않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찾아가 함께 노래할 수 있는 현재의 공간으로 다시 만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우선은 가까운 상영관을 찾아 스님의 생명의 언어에 같이 귀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고맙게도 내성천이 아직 그곳에 있어서 가능한 일입니다.
종교환경회의, 영양댐 반대 주민 방문과 격려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천도교, 불교 등 5대 종단으로 구성된 종교환경회의에서 영양댐 계획은 백지화 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지난 3월 30일 영양군청을 방문하여 전달하고, 영양군청 앞에서 진행 중인 영양댐 백지화를 위한 금식기도회를 방문한 후, 송하리 마을에서 주민들과 대화하고 응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한 장파천의 맑고 아름다운 계곡과 천도교 제2세 교조 해월 최시형신사의 49일 기도처인 다들바위를 둘러보았습니다.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마을 주민들에게 성직자들의 방문과 격려는 큰 힘이 되는 듯 마을 할머니들이 너무 좋아하고 고마워합니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이런 응원과 격려방문이 산골 동네 어른들에게는 천군만마입니다.
KBS 환경스페셜 폐방, 그러나 이 땅의 생명에 대한 기록은 계속 되어야...
“지구, 인류, 미래의 철학이 담긴 생태 환경 다큐멘터리” KBS 환경스페셜이 오는 4월 3일 밤 10시, 15년 539회 기록을 끝으로 시청자의 안방에서 사라진다고 합니다. 알게 모르게 의지하던 가까운 벗을 잃는 듯 합니다.
지난 주 4대강조사위원회와 4대강복원범국민대책위원회의 광범위한 남한강 재첩 폐사조사시 수중 촬영했던 윤순태감독은 동강댐 백지화 과정에서의 환경에 대한 깊은 사회적 관심이 KBS 환경스페셜을 낳았다고 회고합니다. 15년간 이 땅의 환경과 생태를 시청자들에게 보고해 온 환경스페셜이 우리 사회에 기여한 것들을 짧은 말로 표현할 수는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일까요? KBS 내부적으로는 폐방의 타당한 여러 이유가 있어서 결정하였을 수 있겠지만, 이 땅의 환경과 생태가 전 방위적인 파괴의 위험에 처한 지금 환경스페셜이 방송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환경스페셜만한 깊이 있는 환경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방송이 따로 있어보이지도 않습니다. 공영방송 KBS에 시청료를 납부하는 한 사람으로서 말한다면 환경스페셜은 이 땅의 생명에 대한 기록을 계속하여야 하고, 시청자들에게 전달하여야 합니다.
글/사진 박용훈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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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생태지평 박용훈 회원의 글입니다.
박용훈 회원은 4대강 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촬영하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보내주시는 글과 사진들을 생태지평 모든 회원들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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