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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한천작우(旱天作雨)'에서 '시화연풍(時和年豊)'까지



/명호(생태지평연구소 연구원)


입춘(立春)에 대문에 붙이는 立春帖(입춘첩)에서 자주 사용되는 문구 중에는 ‘우순풍조(雨順風調) 시화세풍(時和歲豊)’이라는 말이 있다. 그대로 해석하자면, ‘비는 순조롭고 바람은 조화로우니, 세상이 화합하고 풍년이 들어 세상살이가 여유롭고 평안하다’라는 말로 해석될 듯하다. 농경사회에서 전쟁과 같은 큰 일을 제외하고, 일상사에서 풍년을 좌지우지하는 비와 바람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무려 36번이나 사용되었을 정도라 한다.


이 중에서 ‘시화세풍(時和歲豊)’은 ‘시화연풍(時和年豊)’과 같은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시화연풍’은 ‘시절이 평화롭고 해마다 풍년이 든다'는 말로 쉽게보면 태평성대(太平聖代)를 뜻하는 말이다. 농경사회도 아닌 현대에서 '시화연풍(時和年豊)'이라는 말이 정치적으로 가장 주목받은 시기는 아마도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자 신분 시절에 2008년 사자성어로 ‘시화연풍’을 선정할 때가 아니었나 싶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측은 시화(時和)’는 국민화합, ‘연풍(年豊)’은 경제성장이라고 해석하였고, 정치적으로 반대 세력 사이에는 ‘새 권력에 화합(時和)해야 좋은 결실을 맺는다(年豊)’는 속뜻이 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한다.


시화연풍을 제시하면서 출발한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간다. 그동안 747경제공약을 공식적으로 포기한 경제상항이야 할 말도 없는 듯 하다. 오히려 경제상황은 눈 밖에 난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 칭하였지만, ‘도덕적으로 완벽한 비리집단’으로 전락한 것이 요즘 이명박 정권의 실상이다. 지난 2011년에는 한국 투명성 기구가 뽑은 부패뉴스 결과, 1위는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매입논란, 2위는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 3위는 이명박 대통령 친인척 측근비리가 차지하고 있다. 대통령과 측근 친인척이 부패뉴스 1위부터 3위까지 차지하는 씁씁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급기야 이명박 정권 내내 '영덕대군', '만사형통, '상왕''으로 무소불위 권력을 누렸고, 사석이 아닌 공개석상에서 이 대통령을 "명박아…“라고 불른 적이 있다는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최근 수뢰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되었다. 이에 앞서 대통령의 멘토라는 최시중 전방송통신위원장은 8억원 수수 혐의로 기소되었고,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역시 2억 6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었다. 사촌처남 김재홍은 제일저축은행 관련 4억원 숫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 이영호 전 청와대고용노사비서관은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기소되었다. 대통령 측근 중 범죄혐의가 입증되어 기소되거나 혹은 교도소에서 시간을 보낸 인사들은 부지기수로 많다.


측근비리와 관련하여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자랑하던 이명박 대통령조차 취임 4주기 특별기자회견(2.22)을 통해 ‘국민여러분께, 할 말이 없다"고 사과했을 정도이다.


비단 측근비리만 이명박 정권의 문제는 아닌 듯 하다. 6월 21일 기상청의 발표에 의하면 104년만의 가뭄이라는 올해, 농민들은 어떻게든 물을 확보하려 밤잠을 설치고, 급기야 소방차로 물을 공수하여 모내기를 할 지경이었다. 정부는 대책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와중에, 이명박 대통령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된 ‘유엔지속가능개발 정상회의(Rio+20)’에 참석해 “포용적 실천전략(inclusive action strategy)”이라는 연설을 했다. 


이 연설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2백년 빈도의 기상이변에 대비해 추진된 수자원 인프라 개선사업(4대강 살리기 사업)은 홍수와 가뭄 모두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있습니다." 이 연설과 관련하여 언론에서는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이라 비아냥거렸을 정도다. 여기에 더해 4대강사업추진본부 관계자가 "가뭄이 때 아닌 폭염 때문에 정서적으로 발생한 느낌이지, 실제로는 아직 나타나지 않는 착시현상"이라며 가뭄 자체를 부인하기도 했다. 온 국토가 가뭄으로 고통받고 농민들은 벼랑긑에 몰려서 하늘만 바라보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다 보니,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이쯤 되면 정말 막가자’는 발언처럼 들린다.


연설문이야 실무자가 작성하였겠지만, 실상 이명박 대통령은 ‘우순풍조(雨順風調) 시화세풍(時和歲豊)’ 혹은 '시화연풍(時和年豊)'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리고 4대강 사업 추진 관계자도 역시 ‘가뭄과 홍수를 해결하는 만능 사업으로의 4대강 사업’의 효과를 기대하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상 세상살이라는 것이 그리 간단치 않듯이, 농어촌공사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4대강 사업을 통해 용수를 공급할 수 있는 농지는 전국 농지의 3% 미만이라 한다. 4대강 사업으로 국가하천에는 댐을 세워 물을 가득 채워 놓았지만, 실상 이 물은 사용할 방법도 별로 없고 가능성도 낮다는 것이다. 국가하천 주변의 농지들은 그동안 가뭄 피해가 없었기에, 그곳에 용수를 공급한다고 4대강 사업의 효과가 나타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철없는 주장이다. 4대강 사업 초기 논쟁과정에서 밝혀진 것처럼 가뭄지역과 4대강 공사 지점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우순풍조(雨順風調) 시화세풍(時和歲豊)’ 꿈은 그렇게 한 여름밤의 몽상으로 끝나버렸다. 4대강 사업으로 ‘가뭄해결을 자랑’한 지 1주일도 되지 않아, 대통령은 가뭄해결을 위해모든 역량을 동원하라는 때늦은 지시를 내렸다.



결국 가뭄은 또 다시 하늘이 해결하였다. 정부가 해결한 것은 하늘만 바라본 것 이외는 없는 듯하다. 온 국민의 마음이 하늘님과 통했는지 장마가 오고 태풍이 불고 천둥벼락과 함께 비가 내려서 온 대지에 생명수를 공급한 것이다. 이 과정에 정부의 존재감은 없었다.


그런데 특이하게 이명박 대통령은 ‘우순풍조’를 주장하기 앞서, 이보다 앞선 2007년의 사자성어로는 맹자 양혜왕 편에 나오는 '한천작우(旱天作雨)'를 제시했다. ‘한천작우’는 ‘폭정은 반드시 하늘의 심판을 받는다’는 뜻이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측은 "하늘은 군주의 정치에 대해 분명한 시비를 가린다. 폭정에 대해서는 엄중한 벌을 내리며, 그 벌은 백성이 내리지만 결국 하늘의 뜻이다. 어지러운 세상이 계속되고 백성의 도탄이 지속되면 하늘은 백성의 뜻을 살펴 비를 내린다"고 풀이했었다. 어지러운 세상이 계속되고 백성의 도탄이 지속되면 하늘은 백성의 뜻을 살펴 비를 내린다.’ 작금의 상황을 이보다 명쾌하게 설명하는 말이 어디 있을까? 대통령은 의미없이 ‘우순풍조(雨順風調) 시화풍년(時和豊年)’을 읍조리지만, 백성들은 ‘한천작우(旱天作雨)'를 진심을 담아 낮은 목소리로 읍즈려 본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는 반년 정도 남았다. 이제 성인들의 말씀처럼 하늘은 군주의 정치에 대해 분명한 시비를 가릴지 지켜볼 일이다. 사람의 일이 끝나면 하늘의 가름을 기다릴 뿐이다. 결과가 시화풍년(時和豊年)인지 한천작우(旱天作雨)인지 궁금하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