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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DMZ 155 평화생명 생태학교 참가기(1)


DMZ 155 평화생명 생태학교 참가기(1)
- 'DMZ 155 평화생명 생태학교'를 다녀오다 - 한강하구를 찾아서 -



격주로 주말마다 1박 2일의 시간을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면 그 시간도 짧다고 느껴지지 않을까? 10월부터 12월까지 6번에 걸쳐 DMZ를 탐방할 기회가 주어졌다. 바로 생태지평에서 개최한 'DMZ 155 평화생명 생태학교'이다.

정전협정의 틈, 통일의 물꼬 한강하구

사진작가이자 평화운동가인 이시우 씨와 함께 ‘한강하구’를 만나기 위해 찾아 나선 첫 기행지는 서울에서 두 시간 정도 차로 달려 도착한 강화도 북장곶 돈대.

민간인 통제구역이기 때문에 군부대의 허가와 안내장교의 인솔을 받아서 들어갈 수 있었다. 바다로 향하는 빠른 물살이 눈에 그대로 보였고 강 하구라서 많은 토사가 퇴적되어 습지도 발달해 있는 곳이다. 하지만 우리가 신경을 가장 많이 쓴 부분은 철책선이었다. 김포를 지나서부터 시작되는가 싶더니 한강하구를 칭칭 감고 있는 철책과 초소는 사진촬영에도 많은 제약을 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철책선은 이미 우리 마음에 넘을 수 없는 선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철책선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단과 냉전이 만들어 낸 고정관념. 답답했다. ‘한강하구’를 바로 보기 위해서는 바로 이 철책선부터 다시 알아보아야 했다.

애기봉 전망대에서 바라 본 한강하구. 왼쪽에서 길게 뻗어 나온 곳이 이북의 관산포이며 오른쪽이 이남의 시암리 습지이다. 왼편에서 흘러나온 임진강과 오른편에서 흘러나온 한강이 합쳐지는 곳이다. 이 물은 다시 강화로와 김포 사이의 염하강과 합쳐지고 이북의 개풍군을 가로질러 흘러나온 예성강과 합쳐져 서해로 빠져나간다.

새들은 한강하구를 넘어 남과 북을 오고간다

1953년 7월 27일 유엔군, 중공군과 인민군 사령관이 서명한 정정협정을 보면 ‘군사분계선’은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지나 보이는 임진강 건너편에서부터 시작해서 동해안 고성까지, 즉 육지에만 존재한다. 오히려 정전협정 1조 5항에 '한강하구수역은 쌍방 민간선박의 항해에 이를 개방한다'라고 따로 명시되어 있어 한강하구 어디에도 군사분계선이나 비무장지대가 있다는 말은 없다. 아무에게도 통제권과 권한이 없는 곳이며 게다가 60~70년대까지는 7개의 도선이 존재하여 민간선박이 다닐 수 있었던 곳이다. 새로운 발견이었다.

더불어 한강하구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고 우리나라의 큰 강 하구 중 유일하게 하구둑이 설치되지 않아 생물다양성이 풍부하고, 생태적으로 우수한 자연경관이 보전된 지역이다. 김포대교 남단에서 강화군 송해면 사이에는 하천제방 및 철책선 안쪽의 60.668㎢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생태적으로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곳이다.

이제는 남북 사이에 철로도 놓이고 도로까지 열린 지금, 이미 정전 때부터 대치가 아닌 만남의 곳이었던 ‘한강하구’의 철조망을 걷고 본래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한강하구는 해마다 이맘때면 북쪽으로 찾아가는 철새들의 휴식처이자 월동지이기도 하다. 한강하구를 둘러친 철조망도 아랑곳하지 않고 넘나드는 철새들처럼 자유롭게 남과 북을 오갈 날을 그려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논쟁 앞에 의연히 살아 숨쉬고 있는 한강하구

둘째 날은 신재식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사무국장과 함께 김포지역 민통선을 탐방했다.

한강하구 지도. 정전협정 상의 군사분계선은 육지까지만 존재한다.

애기봉전망대는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조강리 해발154m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강하구의 모습을 가장 넓고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북녘 땅도 불과 2km이내에 위치하고 있어 날씨가 좋을 때는 개성의 송악산과 이북 주민들이 생활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애기봉에서 내려다 보이는 강은 ‘조강’, 즉 할아버지 강이라는 뜻으로 불리기도 한다. 멀리 태백산에서부터 내려온 한강이 나이를 많이 먹어, 그리고 그만큼 물살이 세지 않고 편안해 진다는 뜻이다. 애기봉전망대에서 왼쪽 옆에는 얼마 전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보다 훨씬 넓은 3만 평 정도의 매화마군락지가 위치해 있단다. 논에서 자라는 매화마름은 멸종위기 야생식물 중 하나이다. 깨끗한 환경에서만 자라는 매화마름은 모내기 시작 전에 꽃피우고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한강은 마지막 바다로 나가기 직전까지도 우리에게 정말 많은 것들을 주고 가는구나.

전망대를 나와서 시암리, 석탄리, 후평리 평야지대로 내려왔다. 철책선을 따라 걸으며 돌아보기 위해서다. 이제 막 추수가 시작된 들판은 '금파' 즉, 금빛파도라는 김포의 다른 이름답게 잘 익은 벼들이 한껏 부풀어 올라 있어 농민과 햇살과 땅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습지에는 천여마리의 쇠기러기가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앉아있는 멋진 광경도 볼 수 있었다.

시암리 습지는 한강하구 최대습지로 천연기념물 재두루미가 다녀가는 곳이었으나 현재는 비닐하우스와 벼베기 이후 농지관리의 변화로 인해 거의 오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는 시암리 습지가 아닌 홍두평야에서 7마리가 발견된 이후 현재 120마리 정도가 매년 찾아온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인간의 삶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것은 불가능한가 하는 생각에 씁쓸해지기도 했다. 인간이 먹고 사는 곳과 새들이 먹고 사는 곳이 같으니 어느 한 쪽만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강자인 인간이 약자인 새들을 배려해주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강하구에 존재하는 유일한 포구인 전류리 포구.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으로 생태의 보고이다. 예전에는 노를 저어 고기를 잡아야 했으나 지금은 60마력까지 허용되고 있다.

버스로 이동하는 중에 전류리 포구를 지나쳤다. 어업활동 중임을 표시하는 붉은 깃발을 단 배 5~6척이 일렬로 떠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강하구 최북단의 마지막 남은 민물포구. 철책선 안쪽으로 노니는 철새들만 보다가 강물에 떠있는 어선의 모습을 보니 참 신기하기도 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어종이 다양하고 많아서 큰고니나 흰비오리가 많이 찾아오고, 민간인도 겨울엔 들어가 전류리포구의 명물인 새우와 숭어, 웅어를 맛볼 수 있다고 하니 살아있는 한강하구의 모습을 만끽하기에 제 격인 곳이다.

우리나라 주요 강 중에서 유일하게 바다로 직접 흐르는 강. 한강. 보통 DMZ 하면 높은 철망과 지뢰위험 표시가 되어있는 해골표지판이 떠오르지만 한강하구는 그와 달리 정말 평온하고 아늑한 곳이었다. 가장 중무장되어 있는 곳이 비무장지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역설은 사람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서 생태의 보고가 되는 역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사람이 만든 아픔의 역사와 자연이 만든 새로운 생명이 어우러진 곳, 평화와 생명의 땅 DMZ를 앞으로 어떤 공간으로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는 더 이상 미룰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준비하고 만들어가야 할 과제이다. 이번 탐방을 시작하며 미래를 먼저 준비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자는 마음이었는데 한강하구를 보면서, 한강하구로부터의 가능성을 통해서 많은 부분 채울 수 있었던 것 같다.

글 / 이승은(생태지평 회원)

사진 / 여상경(월간 노동세상 편집장)


지난 10월부터 생태지평연구소에서는 'DMZ 155 평화생명 생태학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강하구, 북한강 상류, 임진강변 습지, 철원평야 등 DMZ 일원의 곳곳을 돌아보며, 지역 운동가와 전문가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번 생태학교에 참가하신 분들이 보내온 글들을 여러분들과 나누려 합니다.  <편집자 주>

* 이 글은 월간<노동세상>에 게재되었습니다.

담당 / 손성희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