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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시선 칼럼

잊지 말아야 할 태안 기름오염 사고






* 글: 장지영(생태지평 연구소 연구원)
 
 
사상 유래 없는 최악의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지 4개월이 지났다. 지역 주민들과 100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의 눈물 어린 노력으로 눈에 보이는 기름띠는 빠른 속도로 제거되었다. 필자는 얼마 전 태안 앞바다를 찾았다. 바다는 겉보기에 예전 모습을 되찾았고, 시커먼 파도가 끝도 없이 넘실대던 만리포 해수욕장도 이젠 기름냄새 대신 바다내음이 제법 난다. 자원봉사자들의 기름제거 작업은 여전했고, 분주하게 오가는 포크레인은 모래사장을 밭갈 듯 뒤집어 기름제거를 돕고 있었다. 그리고 만리포 한켠엔 바다에 발을 담그고 노니는 사람들도 하나, 둘 늘어간다. 국민들의 성원이 빠른 기름제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보이는 기름은 상당부분 제거되었다 하더라도, 퇴적층으로 흡수된 기름은 지속적으로 저서생물에 영향을 미쳐 생태계 회복과정을 방해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많은 양의 기름이 퇴적물 내에 묻힐 경우 기름의 독성 성분이 지속적으로 배출되거나, 이동하면서 오염범위를 확산시켜 생태계 시스템뿐만 아니라 해안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보이지 않는 기름띠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사고 발생 직후 정부 국책연구기관은 물론 각 대학, NGO까지 수많은 연구기관에서 조사를 시작했다. 문제는 이러한 조사가 얼마나 장기적으로 진행되어 기름오염을 끈질기게 추적하고 생태계 복원 프로그램을 수행하느냐 이다. 이를 통한 중·장기 데이터 확보는 피해주민들의 배상을 위한 과학적 증거자료로 이용될 뿐만 아니라 환경복원 측면에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1995년 여수 앞바다에서 발생한 LG 씨프린스호 기름유출사고 직후에도 반짝 진행된 조사연구는 결국 중·장기적으로 진행되지 못해 이번 태안사고 때에도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에 반해 1989년 알래스카에서 발생한 엑슨 발데즈호 기름유출 사고의 경우,  800여건 이상의 조사보고서가 발표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19년이 지난 지금까지 피해소송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기름오염 사고 이후 장기적인 환경피해 조사는 피해지역의 생태계와 지역사회 회복을 위한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기름유 출 사고 후 생계 터전을 잃은 피해 어민들이 막막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상실감, 그리고 정부의 안일한 대응에 분노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가 잇따랐다. 쭈꾸미 잡이가 한창이어야 할 올 봄은 조업이 전면 중단된 피해주민들에게는 꿈에서나 그물질 할뿐 잔인하기만 하다. 이런 불행한 사태는 더 이상 없어야 하겠지만 기름오염에 대한 손해배상 절차가 아직 시작도 안된 상황에서 지역 주민들의 생계대책 마련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로 태안 기름유출 사고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충남 태안군 피해주민들은 70% 이상이 자살충동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최근 조사됐다. 자살충동의 원인으로는 생계곤란이 85.2%로 가장 컸고, 바다에 직접적으로 생계를 의존하고 있는 어업종사자(84.8%)가 상업종사자(54.7%)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다.
 
지 금까지의 유류오염 어업피해 손해배상 과정을 살펴보면, 피해액 산정 논란으로 사고 발생 직후부터 손해배상 기간은 장기화되는 것이 보통이다. 외국 선진국의 경우 손해배상율이 70%를 상회하는데 반해 우리나라 어업피해 손해배상율은 고작해야 평균 18%에 불과하다. 이는 유류오염 피해를 과학적으로 입증할 국내 전문성과 산정기술이 낙후했기 때문이며, 어획생산량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없기 때문이다. 정확한 피해액 산정을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어업생산량을 기준으로 피해정도와 피해기간, 기름오염에 의한 어업생산량의 감소 및 폐사 등을 조사해야 하지만 이에 필요한 기초자료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배상작업은 계속 늦어지고 있고, 배상을 기다리는 동안 생활고로 비관한 어민들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기름띠와의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잔인한 봄을 딛고 태안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피해어민들의 피해액 산정과 배상작업을 조속히 추진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는 온갖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주민피해 뿐만 아니라 기름오염으로 전체 환경이 받았을 피해에 대한 장기 조사에 대해서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기름오염 사고 이후 공황상태에 빠져있는 주민들에게 회생의지를 북돋고 지역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도 사고 이전과 이후를 면밀히 비교하여 태안지역의 새로운 발전방안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이번 사고의 과실책임이 명백한 삼성중공업은 단순 법적 책임을 넘어 지역사회와 서해바다 생태계를 파괴시키고, 온 국민들의 국력을 낭비시킨 죄과에 대해 생태계 복원과 지역사회가 회복될 때까지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100만명 이상 되는 자원봉사자들의 이름으로 태안은 계속 기억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