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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시선 칼럼

봄을 보내면서 맞는 단상


대통령의 안일한 상황인식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던 일본 후쿠시마 핵 사고 소식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관련해서는 지난번에 한번 소개하였는데, 최근 일본정부에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1호기가 최악의 상황(멜트다운)이고, 2-3호기조차 위험하다고 인정하였다. 국제적 핵발전소 사고 기준으로 무려 7등급이라 한다. 인류의 최악의 핵발전소 사고였던 체르노빌이 7등급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번 사고가 어느 정도인지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상상할 수 없는 핵발전소 참사를 겪은 나라 옆에 사는 대한민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5.17) 한국원자력기술원(KINS)을 방문해서 일본 핵발전소 사고에도 불구하고 핵발전소 건설 정책을 계속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전 세계가 핵발전소 사고의 위험성을 다시 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와중에 나온 발언으로는 심상치 않다. 이명박씨 개인의 독선적인 판단이라면 모르나, 국민과 국토의 생명을 담보해야 하는 일국의 대통령 발언치고는 너무 안일한 상황인식이라 하겠다.

신록이 우거진 계절
하여간 일본 핵발전소 사고에도 불구하고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산과 들의 나무들은 벌써 봄을 보내고 여름을 맞이하려는지 신록(新綠)이 우거진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한 탓인지 갈수록 신록을 볼 수 있는 시기가 짧아진다. 새로운 잎을 내기 적당한 기후대가 기후변화에 의해 짧아지다보니 온갖 수목들이 그 짧은 시기에 더 많은 잎을 경쟁적으로 내보낸다. 보는 눈은 즐겁지만 자연의 입장에서는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치열한 삶의 경쟁이라 하겠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사람 눈에 보기 좋아도 자연의 입장은 다른 것이 무지기수로 많다. 지난 4월 13일 고창군 고인돌 유적에서는 국토해양부와 환경부가 주최하는 ‘습지의 날’ 행사가 진행되었다. 애초 습지의 날은 ‘2월 2일’이나 한국의 기후대로는 행사를 하기에 적절한 날이 아니어서 4월 13일로 일정을 바꾸어 진행했다고 한다. 습지의 날은 원래 1972년 2월 2일 이란에서 채택된 람사르 협약(Ramsar Convention. 습지의 보호와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국제 조약. 공식 명칭은 ‘물새 서식지로서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을 기념하기 위해 1997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습지(濕地)는 말 그대로 ‘습한 지역’이다. 물이 흐르다 고이거나 혹은 물에 잠겨있어도 습지로 습지로 분류된다. 통칭 6m 이하 수심을 유지하는 수역을 습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습지는 인간에게는 오랜 세월 이용하기 불편하고 버려진 땅이었다. 늪과 저수지, 호수와 하천, 그리고 갯벌도 모두 습지의 다양한 유형이다. 하지만 인간의 무관심과 무관하게 자연생태계에서 습지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많은 무척추동물 및 어류, 조류 등 생명체의 서식처이고 포유동물에게는 수원을 공급하는 곳이다. 또한 홍수와 가뭄을 조정하는 기능을 가진다. 그렇기에 요즘은 생물종다양성의 측면에서 습지의 기능에 대해 재조명되고 있다. 그렇기에 습지의 생태학적 수리적 경제적 가치에 대한 재조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습지의 날에 습지를 걱정하다.
이러한 습지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린다니 한국은 환경보전의 선진국이라 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한국사회에서 습지의 중요성이 알려진 것은 너무나 많은 습지들이 훼손된 이후의 일이다. 새만금 갯벌을 포함하여 4대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안습지-내륙습지가 훼손된 이후에야 우리는 습지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하였고, 한국의 습지 훼손에 대한 우려가 외국에서 먼저 제기된 이후에야 중요성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앞서의 ‘습지의 날’ 당일 행사에서는 고창의 ‘운곡습지’가 우리나라 16번째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국내의 습지 보전상황은 녹록치 않다. 4대강에서 훼손되는 98개의 하천 습지는 말할 것도 없고, 크고 작은 연안의 갯벌을 대상으로 하는 간척사업은 계속되고 있다. 당장 강화도 앞 갯벌을 비롯하여 서산 태안의 가로림만 역시 조력발전이라는 미명아래 훼손될 위기에 있다.

세상은 이것을 개발이라고 한다.
뭇생명의 아픔보다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그리고 경제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여기서는 인간이 인간을 소회하고 인간이 자연을 소회시킨다.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객체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지 못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무시무종(無始無終)을 모르고 사는 세속의 일이라지만, 이속에서 돌고 도는 삶의 수레바퀴에 담겨진 공업의 아픔을 어떻게 정당화 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두렵다. 사람 눈에 ‘보니 좋더라’는 자연에게는 재앙일 수도 있다.


돌아보면 올해의 짧은 봄은 4대강과 구제역, 일본후쿠시마의 소식으로 넘쳐났다. 그리고 그 봄의 끝에서는 4대강 공사로 인해 5일이나 상수도가 끊겨 생수를 구입해야 했던 구미와 광주 시민들이 있었고, 원인도 모른다는 서울 한강의 붉은 흙탕물이 흐르고 있었다.

원래 ‘법(法)’이라는 글자는 ‘물’이라는 뜻(氵→水)과 ‘간다(去)’는 뜻으로 구성되었다. 그렇기에 ‘법’이란 ‘물이 흘러가는 이치’라는 것이다. 사실 물이 흐른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오늘도 흐르는 한강의 붉은 흙탕물이 만고의 진리를 거부하는 사회에 보내는 경고하는 자연의 신호가 아니기를 기원할 따름이다. 그리고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봄을 보내야겠다.

<끝>추신 : 4대강 공사로 인해 구미취수장의 가물막이가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하여, 지난 5월 8일부터 12일까지 상수도가 단수되어 구미와 김천, 칠곡 등지에서 최대 10만여 가구가 불편을 겪었다. 5월 11일 영산강에서는 4대강 공사로 상수도관이 유실되어 광주시 일부 지역의 상수도가 10시간 동안 단수되어 불편을 겪었다. 한편 4월말 수도권에 비가 내린 이후 팔당댐으로 유입되는 남한강은4대강 공사장 곳곳이 붕괴 유실되어 흙탕물로 변하였고, 이후 10여 일 동안 서울 시내의 한강에는 흙탕물이 흐르고 있으나 원인을 찾을 수 없다 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 명호(생태지평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