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 치료, 참 세심하게 하네!
- [방문기] 일본 의료기관의 환경성 질환치료 현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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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피아이지구의아이네트워크와 간담회 |
생태지평연구소는 ‘아토피 Zero 세상을 열자’ 국민운동의 일환으로 우리 사회보다 앞서 아토피 고통을
경험한 일본의 현황과 정부의 노력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1월 28일부터 2월 1일까지 일본을 방문하였습니다. 5일 동안 방문한 지방자치단체,
3곳의 의료기관, 4곳의 환경단체 활동을 소개함으로써 선진 대응 방안을 도입하고 한-일 협력방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아토피 환자들이 마음껏 소리칠 공간 만들리라!'
벌써 십여 년이 흘렀다. 2000년 2월, 아토피 피부염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만해도 한국에는 아토피 피부염이라는 용어가
생소했다. 한의사인 나 역시 아토피 피부염은 일종의 태열과 비슷하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때 아토피 피부염으로 한국에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은 일본 의사 니와 유끼였다. 물어물어 일본의 남단에 위치한 고치현(高知縣, Kochi)의 도사시미즈 병원을 방문했다. 그
병원에는 한국의 아토피 피부염 환자들도 적지 않았다.
환자들은 그 병원에서 숙식을 하면서 자연식으로 먹고 일종의 기숙사 생활을
했다. 병원 주변을 둘러보니, 공기와 물이 좋기로 유명한 지역이라는 현지인들의 자랑이 끊이지 않았다. 니와 박사가 시골(?)에 병원을 설립한
이유 역시 좋은 공기와 안전한 유기농 먹을거리가 아토피 피부염 환자들에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니와 박사의 아토피에 대한
이론이나 치료술, 약품들에 대해서는 별로 큰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함께 더불어서 밥을 먹고 게임을 하고
수다를 떠는 일상이 활기차고 생동감이 있어 인상적이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아토피로 고통 받는 분들이 마음껏 소리치고 떠들고
거침없이 활보할 수 있는 공간을 한국에도 꼭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목표를 향한 걸음을 시작했다.
십 년이 지나 2009년
1월 생태지평연구소와 함께 다시 일본을 방문했다. 아토피 피부염, 천식, 알레르기 질환의 치료와 관리 정책에 대한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나의 임무는 아토피 피부염 치료를 전공하는 의사로서 일본의 아토피 질환의 치료가 과거보다 얼마나 발달했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적당량 사용하라는데 어느 정도가 적당한 거죠?"
▲아타야도 병원 기무라 의사와 간담회
일본에서 첫 번째 만난 의사는 고베의료생협에서 운영하는 병원의 기무라 아키히로(木村彰宏) 소아과 의사였다. 그는 유·소아 아토피 피부염에
대해 설명하기에 앞서 우리한테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들은 보습제나 연고와 같은 외용제를 사용할 때 아토피 피부염 환자분들에게
어떻게 지도하나요?”
우리는 일시에 서로 쳐다봤다. 그냥 건조한 부위나 가려운 부위에 적당량을 사용하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아는
전부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황하는 것을 보고 빙그레 웃으면서 기무라 선생은 직접 시연해 보이며 설명했다.
외용제를 바를 때
우리는 무심코 문지르게 되는데, 반드시 한쪽 방향으로만 문질러야 한다는 것이다. 양쪽 방향으로 문지르게 되면 마찰열에 의해 외용제의 변성을
일으키고 흡수율을 낮추기 때문이다.
외용제를 사용할 때 양은 어느 정도가 가장 적당할까? ‘적당히’가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의
전부였다. 건조함의 정도, 환부의 넓이가 천차만별인데 그것을 어떻게 기준을 세울 수 있단 말인가?
기무라 선생은 종이티슈를
외용제를 바른 부위에 가볍게 올려놓았을 때 티슈에 외용제 성분이 묻어나지 않으면서, 동시에 티슈가 바로 떨어지지 않고 달라붙을 정도가 가장
적당하다고 알려줬다. 우리 일행이 역시 일본인답다고 생각하고 있을 쯤, 가장 핵심적인 내용 한 가지를 더 가르쳐 주었다. 그는 이 두 가지
내용을 반드시 의사가 환자와 보호자가 보는 앞에서 시연해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난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스스로 아토피 피부염 전문가라고 자부하면서도 환자들에게 저렇게 세심한 곳까지 신경써줄 마음이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기무라 선생의 어찌
보면 쇼와 같은 행동은 깨지기 쉬운 유리와 같은 환자와 보호자들의 지친 마음을 배려하는 표본이었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깊이 반성하는
시간이었다.
천식환자를 위한 천식카드, 기발하네!
두 번째로 가네가와현의 보건의료담당 공무원을 만났다. 그는
의사가 아니었다. 일본의 경우, 환경성 질환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꽃가루 알레르기라고 알려진 화분증이다.
태평양전쟁 후에
일본은 황폐화된 국토를 복구하고 전후 일본사람들의 궁핍한 생활을 극복하기 위해 일종의 나무심기운동을 펼쳤다. 그때 일본 전국에 심은
삼나무(杉─, Japanese cedar)의 꽃이 일본 화분증을 일으킨 주범이 되었다.
일본의 지방자치단체는 삼나무의 분포와
봄철의 풍향을 고려했을 때 당해 연도에 얼마만큼의 꽃가루가 날릴지 예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천식 환자들에게 일일이
‘천식카드’를 만들어 주고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대처시스템을 만들어 2008년 4월부터 시행하고 있었다.
‘천식카드’에는 그 환자의 가장 핵심적인 정보가 담겨 있어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의사가 그 카드를 보고 바로 그 환자에게 최적의
응급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매우 중요한 카드다. 돋보이는 정책이었다.
▲ 치바 토모유키 원장
세 번째는 일본의 환경운동단체 ‘아토피아이지구의아이’의
소개로 만난 치바 토모유키(千葉友幸, 치바클리닉 원장)였다. 치바 원장은 1976년 의대를 졸업한 뒤, 아토피 질환, 식품 알레르기, 알레르기
천식과 같은 생소한 질환을 접하기 시작했고, 답을 구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미국 연수를 다녀온 것은 물론이고, 한의학까지 공부했던
경험을 쏟아 놓았다.
같은 시대에 살며,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외국인 의사와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토피 질환엔 무엇보다 심리 안정이 중요"
그는 아토피 질환 예방과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아토피를 앓고 있는 환자들은 먹는 음식이 제한되기 때문에 제한된 식재료로
어떻게 하면 맛있고 보기에도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해 환자들과 함께 ‘요리연구 교실’을 운영한다고 한다. 그리고 공기 좋은 환경이
아토피 질환치료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자연조건이 좋은 외국을 찾아다니며 ‘건강한 환경체험 캠프’도 운영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아토피 질환은 면역시스템, 자율신경계, 호르몬, 심리가 서로 맞물려있기 때문에 심리적 안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신과상담,
심리학, 사회학 전문 지인들의 지원하는 자원봉사 시스템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안과 고통의 일상에 처해 있는 환자들에게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고 의사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밤이고 새벽이고 언제든지 전화통화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이 부분에서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토피를 앓고 있는 환자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으며, 환자들의 치료에 있어서 심리적인 안정과
정서적 편안함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몸소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런 모든 배려들이 의사의 자비(自費)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 만나 마음 훈훈
4박 5일 동안 새벽 6시에 일어나 밤 11시가 되서야
숙소로 돌아오는 강행군 일정으로 몸은 지쳤으나, 환경성 질환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만나 마음은
훈훈했다.
환경성 질환, 아토피 질환을 연구하고 치료하는 한 의사로서 서양의학이든, 한의학이든 유럽의 동종요법을 비롯한 수많은
민간요법들이 있지만, 나름의 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갖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으로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책적으로, 의학적으로, 시민행동으로 어떻게 대처해나갈 것인가에 대해 노력하고 실천하는 모습들을 보게 된 경험은 많은 것을 생각하고
돌아보게 하는 매우 귀중한 시간이었다.
아토피 질환에는 특효약이 없다.
글 : 양성완(I&S한의원 원장, 생태지평연구소 연구위원)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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