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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시선 칼럼

무책임의 정치, 무책임의 과학

무책임의 정치, 무책임의 과학
-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유출을 통해 드러난 원자력의 불편한 진실 -






                                                                                            사진 : 머니투데이ⓒ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배출로 일본은 물론 온 세계가 공포에 휩싸였다. 일본정부는 방사능 오염수 유출이 하루 300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고 유출된 오염수에서는 리터당 8000만베크렐의 방사능 물질이 검출됐다고 한다. 사고 이후 2년 반이 지났어도 복구는 커녕 더 큰 재앙을 일으키고 있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없는 폭탄으로 변해버렸다. 방사능 오염수 유출 사실이 드러난 시점이 일본 참의원 선거가 끝난 직후라는 점, 하루가 다르게 방사능 오염수에 따른 피해와 규모가 확대되고 있는 점 등으로 볼 때, 일본정부는 이러한 배출사실을 지속적으로 숨겨왔을 것이라는  의혹을 충분히 받을 만 하다. 이는 그 이후의 도쿄전력과 일본정부의 보고의 신뢰를 떨어뜨려 일본 국민의 공포와 혼란을 더욱 부채질 하고 있는 현재 상황의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최대 의무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고 할 때 가히 일본정부는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대형 재난 앞에 정부의 무책임하고 무력한 대응으로 천재로 인한 피해가 천재에 버금가는 인재로 확대되었던 사례는 많이 있어 왔다. 그러나 이 때 정부의 책임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가? 사고과정에 대한 투명한 정보 공개책임? 신속정확하게 대응하여 사고확대를 막아야 할 책임? 원상복구의 책임? 물론, 이 모든 책임들은 국가적인 재난 상황에서 정부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공적 책임이다. 그러나 이러한 책임들이 원자력 사고 앞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즉 책임이라는 말을 원자력 앞에서도 쓸 수 있는가?


어떠한 일에 대해 책임진다는 말은 그 일이 일어나는 모든 과정상에 발생되는 수많은 변수와 결과 등에 대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또는 문제가 발생해도 최대한 문제발생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능력의 보유가 있어야 가능한 말이다. 따라서 어떤 일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그 일의 최대치의 파국이 발생됐을 때의 상황에 대한 고려가 필수다. 즉 최대치의 파국이 어떠한 규모인지, 어떠한 상황일지에 대해 경험으로서 예상가능해야 책임진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자력 안전에 대해 책임진다는 말은 어떤 뜻인가? (원전 운영을 국가가 하든, 민간이 하든 원전안전에 대한 감시와 관리에 대한 책임은 속성상 국가가 할 수 밖에 없기에 원전안전에 대한 책임의 귀속주체는 국가라 할 수 있다.) 원전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최대치의 파국에 대해 책임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잠시만 생각해봐도 이 말은 성립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원자력으로 인해 일어나는 최대치의 파국은 인류의 공멸을 의미하기에...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피해의 확산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일본 정부를 보고 있으면, 우리는 알 수 있다. 정부와 원전사업자는 원전사고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것을, 단지 사고가 나지 않게 최선의 관리와 함께 무사고에 대한 확률론적 희망만을 기도하고 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이는 다른 원전국가들도 마찬가지의 상황이며 이들 국가들의 원전 당국자들은 본인은 물론 인류 전체도 책임질 수 없는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이번 방사능 오염수 배출에 대해 일본 정부는 사실 은폐 의혹을 강하게 받고 있다. 지난 7월 참의원 선거가 끝난 직후에 배출 사실이 발표된 것도 석연찮으며, 후쿠시마 제1원전의 저장탱크에서 누출된 방사능 오염수가 다른 배수밸브를 통해서도 누출된 사실도 도쿄전력이 사실을 확인한지 나흘이 지나서야 발표되었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사고 은폐에 대한 의혹제기는 사실 은폐를 할 수 밖에 없는 일본의 사회문화와도 연관 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초기 후쿠시마 제1원전 원자로 핵연료봉의 장시간 노출로 멜트다운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를 막기 위한 밸브 개방이 필요한 시점이었는데도 총리의 현장 시찰로 이러한 조치가 늦어지면서 수소폭발을 초래하여 사태가 더 악화된 사실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정말로 공학적 판단이 필요한 시점에 정치가 개입되어 사태가 더욱 악화되어버린 것이다. 원자력 전문가들이 입만 열면 원전 공학의 완전함을 말하는 것과 달리, 실상 원자력은 과학이 아닌 정치에 의해 강하게 지배되고 있는 것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 직후 수만명이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최고 결정권자들의 가장 큰 고려사항은 천황가계에서 내려오는 3종의 신기를 어떻게 보지 할 수 있을 지였다. 자국 국민들이 말할 수 없을 고통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작 일본 위정자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자신들의 권력을 보장해 줄 상징물의 사수 여부였고, 이는 곧 나가사키 원폭 투하를 유발해 전쟁 피해를 더욱 키웠던 것이다. 물론 미국의 원폭 투하는 인류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이지만 일본 위정자들의 조직적인 무책임이 전쟁 피해를 더욱 키운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바로 이러한 일본 정치권력에 만연한 무책임의 구조가 반세기 이상이 지나 오늘날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일본 위정자들의 무책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일이다.


일본 방사능 오염수 유출로 가장 위험한 상황에 처한 한국의 입장에서 서글픈 것은, 별다른 조치 없이 일본의 방사능 오염 대책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산 농수산물의 전면 수입제한과 일본정부에 대한 투명한 정보공개 등의 요구에도 정부는 ‘(그러한 조치를 할 만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도 수입제한 조치는 하지 않고 있다 등의 이유로 두 손을 놓고 있다. 지난 광우병 사태 때와 같이 선진적 통상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정부의 자발적 주권침해 행위를 여지없이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핵마피아들에 의해 포위되어있는 한일 양국의 불운도 한 몫 끼어 있다. 한일 양국 모두 다 주요 선거가 끝 난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이라 제도적 심판 기회를 마냥 기다리기에는 사태가 너무 심각하다. 정부와 의회에 대책 요구를 지속하는 한편, 지금 시민 스스로의 방사능 감시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정보화가 촉진된 이후,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더 많이 알아가고 있으면서도 불확실성에 대해서는 더욱 취약해져만 가고 있다. 무수한 핵공학자와 과학자를 보유하고도 재앙 앞에서 무력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모습은 과학의 무게가 평화와 안녕의 무게와는 일치하지 않음을 시대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무책임의 과학과 무책임의 정치가 판치고 있는 이 잔인한 시대를 태평양을 뒤 덮고 있는 방사능 오염수가 말해 주고 있다.

 

작성 : 김종겸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