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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의 조건

 

고리 원전 3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
ⓒ 김당



정부가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원전 안에 있는 임시저장시설에 저장중인 사용후 핵연료는 2016년 고리원전을 시작으로 2024년에 포화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 위원회를 구성하여 사용후 핵연료 관리와 관계된 전반적 사항들을 논의하고 논의결과를 바탕으로 방사성폐기물관리기본계획을 수립하겠다는 계획이다.


사용후핵연료란 원전의 연료로 사용되고 난 후의 핵연료 물질을 말한다. 사용후핵연료는 매우 높은 수치의 방사능을 포함하고 있어 중간저장단계를 통해 방사능을 떨어뜨리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고준위 핵폐기물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사용후 핵연료는 직접처분과 재처리, 둘 중 하나의 과정을 밟게 되는 것이다.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 과정은 우라늄과 플로토늄을 추출하는 과정이며 플로토늄은 핵무기의 원료로 이용될 수 있기에, 일국의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은 국제정치적 관계 속에서 통제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한미원자력 협정으로 인해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가 금지되어 있으며, 사용후 핵연료를 원자력 발전소 안의 임시 저장시설에 저장하고 있는 상태이다. 즉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방사성폐기물관리체계가 수립되지 못한 상태이며 정부는 국민여론과 국제여건, 기술적 여건을 주시하며 관망정책을 이어오고 있다. 원자력 정책의 전제라 할 수 있는 방사성폐기물관리체계가 마련되지 못한 상태에서 원자력발전소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으며 이는 원전 주변은 물론 국내의 방사성위험도를 높여왔다. 원전가동을 시작한지 35년이 지났지만 사용후 핵연료에 대해 아직까지 제대로된 사회적 공론화를 추진하지 못한 정부의 무책임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공론화란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거나 혹은 초래할 수 있는 공공사안에 대해 사회구성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합의를 통해 민주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해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전력정책의 독점화가 지속되고 있는 국내의 상황에서 원자력정책은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대안적인 방향으로 결정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속적인 원자력발전 확대 정책만을 추진하였던 국내 원자력발전사를 본다면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공론화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하게 접근 할 수 밖에 없다.


사회적 공론화 추진 그 자체만으로는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지만 사용후 핵연료와 관련하여 그 이전에도 정부가 공론화를 추진하였다가 정부가 일방적으로 중단했던 점, 이번달 안으로 진행예정인 한미 원자력 협상에 대한 정부의 기본입장이 협정개정을 통한 재처리 권한 획득이라는 점, 사용후 핵연료 임시저장 포화시점이 임박하였다는 점 등 여러 요건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즉 이제껏 핵폐기장 부지선정 절차상 정부가 보여준 투명하지 못하고 비민주적인 자세와 행동은 시민사회가 전폭적인 신뢰와 기대감을 가지고 현재의 공론화에 흔쾌히 참여하기 힘든 이유를 말해준다.


만약 정부가 현재의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가 공론화 본래의 의미에 맞는 민주적 공론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정부는 시민사회가 공론화 테이블에 참여할 수 있게끔 신뢰 조건을 만들어 줘야 할 것이다. 그것은 정부가 공론화 과정에 어느 정도의 의미를 두고서 접근하는 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것은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 위원회의 위상과 직결되는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를 규정하고 있는 현재의 방사성폐기물관리법은 매우 큰 한계를 보이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의 추진 및 운영과정이 단일 부처 장관인 산업통상부장관의 권한 아래에서 진행되는 구조라는 점, 공론화 결과는 단지 권고의 성격에 한정되는 점 등 여러 제도적 한계가 있다. 즉 현재의 방사성폐기물관리법제안에서는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가 관련 부처와 시민사회·산업계 등을 포괄하는 위상 속에서 실효성 있게 추진되기 힘든 구조인 것이다.


예를 들어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과정에서는 사용후 핵연료의 중간저장 방식, 부지선정과정 뿐만 아니라 미래의 사용후 핵연료량과 사용후 핵연료 처리 방법 등을 논의할 수 있어야 하나 산통부 장관의 권한 속에서 구성되는 현재의 공론화 위원회의 위상으로는 이러한 사안들을 다루는데 한계가 있다. 특히 앞으로의 사용후 핵연료량과 사용후 핵연료 처리 방법 등은 신규원전 문제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즉 현재의 공론화 과정에서 공론화위원회의 위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공론화에서 다룰 수 있는 범위와 논의결과의 정책 반영여부 등이 모호하거나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또한 국내 원전정책의 방향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수준의 공론화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이상, 결과에 따라서는 정부의 핵확장 정책의 면제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 위원회의 실질적인 운영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공론화 위원회의 위상은 대통령 직속의 위원회 수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논의 범위 또한 사용후 핵연료 관리와 더불어 신규원전에 대한 문제와 재처리 여부에 대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하고, 논의 결과가 정부 정책에 충분하고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향후 신규원전 계획이 실질적으로 논의되기 힘든 상태에서 사용후 핵연료 관리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절벽을 향해 달리고 있는 폭주기관차를 위해 레일만을 깔아 주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을 포함하여 원전을 가동하는 모든 나라에서 사용후 핵연료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순탄하게 진행된 사례가 없을 만큼 핵폐기물 사안은 첨예한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핵폐기물 관리정책이 원전확대정책의 부분적 위치에서 진행되었기에 핵폐기물 관리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커녕 사회적 분열만을 일으켜 왔다. 그 결과는 포화시점을 얼마 남겨두고 있지 않은 쌓여가는 고준위 핵폐기물인 것이다. 문제의 원인이 된 방식으로 문제의 원인을 풀려고 한다면 문제는 반복될 수 밖 에 없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공론화가 어떠한 제도적 한계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지 주시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주창하고 언론이 내보내는 사회적 공론화란 말의 홍수 속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사라질 것이다.



글 / 김종겸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