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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시선 칼럼

현대판 청백리가 절실히 필요한 이유


현대판 청백리가 절실히 필요한 이유
 

명호 연구원(생태지평연구소)

밥 그릇 투정부리던 어른
세상이 어수선하다. 아이들 밥그릇 가지고 무릎 꿇고 눈물 흘리며 투정부리던 서울시장은 자리에서 물러나 야인이 되었다. 국가의 기틀을 바로 세우겠다던 그는 자신의 뜻대로 진행된 선거 투표함도 열어보지 못하고 물러나는 희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서울시 주민투표와 관련하여 160억 원의 비용이 소요되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오는 10월 서울시장 보권 선거에서는 약 300억 원의 선거비용이 소요될 것이라고 한다. 한 정치인의 잘못된 판단에 의해 무려 460억 원의 국민세금이 낭비되는 셈이다.

세금 낭비성 행위는 이것만이 아니다. ‘세금혁명당’의 자료에 의하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정체도 불분명한 ‘한강 르네상스사업’에 5,400억 원, ‘남산 르네상스사업’에 1,800억 원, ‘디자인 서울거리 조성사업’에 870억 원, ‘서울 디자인 올림픽’에 834억 원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한강 르네상스사업의 핵심사업인 ‘서해뱃길 사업’의 사업성은 부풀려졌고 민간사업자의 예측으로도 사업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 국제선 운항만으로 매년 25억 원의 적자가 난다고 한다. 서울 서부의 강남-북을 연결하는 양화대교에서는 서해뱃길 사업을 위해 멀쩡한 다리를 ㄷ자 형태로 만드는 이상한 공사가 한창이다. 이 사업의 필요성과 타당성에 공감하는 시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서울시만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형국이다. 이런 것을 통해 보면 얼마나 많은 국민 세금이 치적성 사업에 투입되었는지 가늠하기 힘들다.

오세훈 전 시장은 온갖 혈세낭비 사업은 다 추진하면서 유독 우리 아이들 밥 먹는 문제에만 인색하게구니 국가의 백년지대계를 어디에서 찾으려 했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토건사업과 세금
사실 지방자치단체의 불필요한 토목사업 혹은 치적성 사업에 의한 세금낭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토건사업 전체가 나쁘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불요불급한 곳에 혈세를 쏟아 붓는 토건사업이 문제이다. 불요불급한 토건사업에 예산을 투입한 결과는 결국 복지예산 및 교육, 공공의료 예산의 축소로 연결된다. 예를 들어 정부는 2011년 4대강 사업 예산확보를 위해 전국 1만 5천여 경로당에 지원되는 동절기 난방비 411억 원을 전액 삭감하였다. 이렇듯이 한정된 예산의 잘못된 사용은 사회적 소득 불평등 감소를 위한 노력을 저해한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OECD 국가들 중 소득 불평등 감소 효과 면에서 최하위이다.

그렇기에 지방자치단체장 등 지도자의 결정에는 매우 신중하면서도 책임감 있는, 그리고 공명정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매년 수천억 원의 토건사업에 소요되는 서울시 예산이 시민의 복지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투입되었다면 우리는 다른 세상을 보고 있을지 모른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잘못된 혈세낭비성 사업의 시작은 사실 우리로부터 시작된다. 선출직 공무원을 뽑는 선거철에만 반짝 관심을 가질 뿐 선거철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서울 행정이니, 국가 행정에서 쉽게 관심의 끈을 놓고 만다. 그들이 진행하는 모든 일이 결국 우리의 세금을 사용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관심하다. 우리의 무관심이 결국 우리 혈세로 진행되는 낭비성 토목사업을 부추기고, 우리의 복지와 삶의 질 하락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납부한 세금이 토목사업에 쓰였다는 역사는 기원전 4,000년 전의 메소포타미아 기록으로도 남아 있다. 세금(稅金)의 '세(稅)'는 곡식을 나타내는 '벼 화(禾)'와 '바꿀 태(兌)'가 합쳐져서 만들어졌는데, 여기서 '兌'는 '빼내다'의 뜻을 지니고 있다. 즉, 수확 중 일부를 공동체 운영에 필요한 경비로 납부하는 것을 세금이라 한 것이다.

세금의 역사는 ‘혁명의 역사’라고 알려져 있다. 자유·평등·박애의 표어를 통해 민주주의 체제의 기본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근대사의 출발점이라는 프랑스 대혁명(1789년) 역시 세금과 관련된 일이었다. 당시 프랑스에서 성직자와 귀족을 제외한 95%의 국민 중 대다수인 농민들은 농가소득의 약 80%를 세금으로 납부하면서도 아무런 권리를 가지지 못하는 기가 막힌 상황에 처해 있었다. 결국 특권층에 대한 세금 징수와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진리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 ’대혁명‘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유사한 사례가 많다. 홍길동에서부터 임꺽정에 이르기까지 온통 탐관오리에 대한 배경 설명이 있지 않은가? 임꺽정의 난에 대해 [명종실록] 편찬자는 “도적이 성행하는 것은 수령의 가렴주구 탓이며, 수령의 가렴주구는 재상이 청렴하지 못한 탓이다. 오늘날 재상들의 탐오한 풍습이 한이 없기 때문에 수령들은 백성의 고혈(膏血)을 짜내어 권요(權要)를 섬기고 돼지와 닭을 마구 잡는 등 못하는 짓이 없다. 그런데도 곤궁한 백성들은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도적이 되지 않으면 살아갈 길이 없는 형편이다”라고 평했다. 탐관오리의 가혹한 징세가 과거의 잘못된 권력의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국민의 혈세를 잘못된 토건사업을 위해 낭비하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정치인의 모습이 현대판 탐관오리가 아닐까 한다.

현대판 청백리(淸白吏)를 선택하자.
‘탐관오리’는 말 그대로 해석하면, 권력을 탐하는 추한 관리를 말하는 것이며, ‘백성의 재물을 탐내어 빼앗는, 행실이 깨끗하지 못한 관리’를 말한다. 역사에는 무수한 탐관오리도 있었지만 그 반대로 대대로 칭송되는 청백리(淸白吏)도 있었다. 40년 재상에도 불구하고 초가삼간도 없었다는 오리(梧里) 이원익(1547~1634)도 있었고, 강직한 선비라는 백사(白沙) 이항복(1556~1618)도 있었다.

오는 10월 26일이면 다시 서울시장을 뽑게 된다. 누가 될지는 하늘만이 알겠지만, 저마다 제시하는 내용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더 이상 불요불급한 토건사업으로, 신기루 같은 망상(妄想)으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거나, 국민을 무시하거나 현혹하는 그릇된 정치를 반복적으로 선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불통과 독단, 독선이 아니라, 건강한 시민사회를 바탕으로 우리의 복지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선택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내는 세금의 사용처를 끝까지 살펴보고 책임을 묻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내가 일구어가는 가족 공동체에서 지역공동체, 사회공동체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수 없는 원력과 공업을 쌓고 있다. 서울 시정을 바로 세우고, 국민의 세금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원력 역시 중요하다. ‘나만 바라는 세상’이 아니라 ‘함께 일구어가는 공동체’를 위한 선택. 주인 된 자의 밝은 눈이 기대된다. 어수선한 세상을 바로잡자.